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에 있는 노바 카호우카 댐이 5일 저녁 공습을 받아 파괴된 모습. (출처: 트위터)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에 있는 노바 카호우카 댐이 5일 저녁 공습을 받아 파괴된 모습. (출처: 트위터)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러시아가 장악한 우크라이나의 남부 헤르손주(州)에 있는 대규모 댐인 카호우카 댐이 파괴되면서 그 아래에 있는 수십개의 마을이 물에 잠길 위기에 놓였다.

우리나라 최대 호수인 소양호의 약 6배 물을 담은 이 댐이 완전히 무너질 경우 30만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이재민이 되고 유럽 최대 원자력발전소인 자포리자 원전마저 위험해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카호우카 당국은 주민 대피명령을 내렸고 양국 정상은 긴급회의를 소집해 대책을 고심 중인 상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이 이번 폭파를 놓고 서로 ‘네탓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카호우카 댐의 폭파가 이미 예견됐던 참사라는 단서들이 나오고 있다. 이에 유엔이 이를 알면서도 방치 또는 미온적으로 대처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천지일보가 6일 러시아 외무부를 통해 단독 입수한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의 공문이 그중 하나다. 바실리 네벤자(Vasily Nebenzya)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노바 카호우카 댐에 우크라이나로부터 대규모 미사일 공격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지난해 10월 21일 유엔과 안전보장이사회의(안보리)에 모든 조치를 취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당시 유엔에 보내는 전문을 통해 “헤르손주 카호프카 수력 발전소에 대한 우크라이나 파괴 계획에 대해 주의를 요청한다”고 서문을 열었다.

이어 “우크라군이 드네프르강(우크라이나어 드니프로강)을 따라 해상 지뢰를 투하하거나 대규모로 미사일 공격을 가하려고 한다”며 “강 수위 상승을 초래할 수 있는 댐에 대한 항공타격이 기록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의 이러한 무분별한 공격은 주변 지역의 치명적인 침수와 헤르손시 전역에 대한 심각한 피해를 야기할 것”이라며 “이에 의해 수천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소중한 생명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이러한 파괴적인 사태의 모든 결과에 대한 완전한 책임은 우크라이나 당국과 이를 지원하고 있는 서방이 져야 한다”면서 “민간인의 안전을 위해 이와 같은 위협을 피하고자 러시아는 현재 드네프르강 오른쪽 강둑에서 대규모 대피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바실리 네벤자 대사는 그러면서 “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모든 가능한 조치를 취해주시길 강력히 요청한다”며 “이 전문을 안보리에도 회람을 부탁한다”고 촉구했다.

실제 그가 강력한 요청을 담은 전문을 보낸 뒤 지난해 11월 6일(현지시간) 카호우카 댐 인근에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대규모 미사일 공습이 벌어졌다.

바실리 네벤자(Vasily Nebenzya)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가 노바 카호우카 댐에 우크라이나로부터 대규모 미사일 공격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지난해 10월 21일 유엔과 안전보장이사회의(안보리)에 모든 조치를 취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 내용이 담긴 전문. ⓒ천지일보 2023.06.06.
바실리 네벤자(Vasily Nebenzya)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가 노바 카호우카 댐에 우크라이나로부터 대규모 미사일 공격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지난해 10월 21일 유엔과 안전보장이사회의(안보리)에 모든 조치를 취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 내용이 담긴 전문. ⓒ천지일보 2023.06.06.

당시 카호우카 댐에 포탄 6발이 떨어져 갑문이 손상됐다고 타스 통신 등 현지 매체들이 일제히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떨어진 포탄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 하이마스)에서 발사된 로켓 포탄이었다. 미사일은 댐을 비롯한 여러 곳을 향해 발사됐다.

러시아가 점령한 헤르손에 들어선 친러 행정부는 우크라군의 공세가 임박하자 카호우카 댐 주변을 비롯한 헤르손 전역에 주민대피령을 내린 바 있다.

그러다가 댐이 폭파되는 이번 사태가 벌어졌다. 6일 공개된 영상에는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에 있는 노바 카호우카 댐 주변에서 격렬한 폭발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모습이 담겼다. 다른 영상에서는 댐의 잔해를 통해 물이 쏟아져나오는 모습이 공개됐다.

[AP/뉴시스] 우크라 대통령실 배포 비디오 사진으로 6일 카코우카 댐이 무너져 큰 물이 넘쳐 흐르고 있다
[AP/뉴시스] 우크라 대통령실 배포 비디오 사진으로 6일 카코우카 댐이 무너져 큰 물이 넘쳐 흐르고 있다

로이터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높이 30m, 길이 3.2㎞에 달하는 이 댐은 지난 1956년 드니프로 강에 있는 카호프카 수력 발전소의 일부로 건설됐다.

이 댐은 2014년 러시아가 합병 장악한 크림(크름)반도와 유럽 최대 원자력발전소인 자포리자 원전에도 물을 공급하는 등 우크라이나 남부에 물을 대는 핵심 기반시설로 18㎦ 규모의 저수 용량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소양강댐(2.9㎦)의 6배가 넘는 규모다.

댐이 파괴되자 그 아래에 있는 수십개의 마을이 침수 위기에 놓였다. 이번 댐 파괴로 인한 범람으로 약 80개의 정착촌이 침수될 수 있으며 댐도 ‘계단식 붕괴’가 발생할 수 있다고 타스 통신이 구급대원을 인용해 이날 전했다.

[AP/뉴시스] 마사르 테크 제공 위성사진으로 댐이 일부 파괴돼 물이 넘쳐나기 직전인 5일 우크라 드니프로강 카코우카 댐과 발전소 모습
마사르 테크 제공 위성사진으로 댐이 일부 파괴돼 물이 넘쳐나기 직전인 5일 우크라 드니프로강 카코우카 댐과 발전소 모습. [AP/뉴시스]

카호우카 당국은 “연안 정착촌의 모든 주민들이 즉시 대피할 준비를 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후 키이우포스트 등 현지 매체는 홍수 경보가 발령돼 하류에 있는 10여개 마을 2만여명이 대피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물에 잠긴 영상들도 각종 SNS에 쏟아지고 있는 상태다. 수위가 높아지면서 이미 마을 곳곳이 물에 잠기는 모습 등 대재앙의 전조가 보이고 있다.

이번 폭파를 두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를 비난하고 나섰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이 댐을 폭파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우크라이나군 남부 사령부는 “러시아 점령군에 의해 댐이 폭파됐다”라고 발표했다.

반면 러시아 언론은 러시아군이 통제하는 댐이 우크라이나 포격으로 파괴됐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당국자는 이번 댐 공격을 ‘테러 공격’이라고 규정하고 “우크라이나가 포격으로 댐 상부를 파괴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러시아의 테러 행위”라고,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은 “러시아의 환경학살 행위(ecocide)”라고도 비난했다.

이어 우크라이나는 6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 소집을 요청했다고 외신이 일제히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댐 파괴 이후 국가안보 및 국방위원회 긴급회의를 소집한 다음이다. 우크라이나는 이와 함께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러시아 테러 문제를 이사회 회의 안건으로 상정해달라고 요구했다.

러시아가 지난해 2월 침공해 장악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 노바 카호우카의 댐이 6일(현지시간) 폭파돼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다. (출처: 뉴시스)
러시아가 지난해 2월 침공해 장악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 노바 카호우카의 댐이 6일(현지시간) 폭파돼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다. (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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