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미국이 동맹국들과 협력해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기술의 국제표준을 정하겠다는 내용의 국가 전략을 내놓았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반도체·배터리·바이오·AI(인공지능)·자율자동차 등 핵심·신흥 기술에 대한 미 정부 자체 국가 표준전략을 마련한다고 밝힌 것이다. 미국이 최첨단 기술 발전을 두고 동맹국들과의 기술 표준을 통해 중국 등 적성 국가들의 기술 굴기를 억제하겠다는 차원이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미 정부의 첨단 기술 표준화를 통해 미국과 같은 생각을 가진 국가들(like-minded) 혁신의 장기적인 성공을 보장할 것이라고 믿는다”라며 “국제표준이 공정한 절차를 통한 기술적 가치에 근거하고 전 세계 국가의 광범위한 참여를 촉진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민간 기업에 표준 기준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초인 2021년 4월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반도체 공급망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삼성전자 CEO 등이 참석한 반도체 대책회의에 찾아가 미 투자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후 반도체지원법을 포함한 중국 견제 대책을 내놓았다. 이 사례와 같이 앞으로 미·중 사이에 AI 등 첨단 기술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할 공산이 크다.

미국은 작년 10월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를 시행하면서 미·중 간 기술 패권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반도체 장비 강국인 네덜란드와 일본도 수출 통제에 합류시켰다. 총 520억 달러 규모 미국 반도체법에 근거해 보조금을 받은 기업에 대해서는 중국에 첨단 반도체 설비투자를 제한하는 가드레일을 설정했다.

또한 중국을 겨냥해 미국기술에 대한 외국인 투자 사전 심사를 강화했고, 미국 월가 자본이 중국 첨단산업에 투자하는 것도 사실상 차단했다. 차세대 국제표준을 주도하기 위한 국가 전략을 발표한 것은 중국과의 기술 전쟁에서 자금 전쟁으로 이제 표준 전쟁까지 예고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는 AI·자율자동차·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양자 회담을 긴밀히 진행하고 있다. 미 상무부가 반도체법(Chips Act)에 따라 설립하기로 한 국가반도체기술센터(NSTC)에도 한국 기업과 연구소들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주도하는 차세대 기술 표준 제정에 우리가 직접 참여할 경우 반도체 등 최첨단 기술 발전의 속도를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은 표준 선정을 위한 국제 협력 파트너로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을 비롯해 일본·호주·인도가 가입된 쿼드, 미국·유럽연합(EU) 무역기술위원회 등을 제시했다. ITU는 국제통신표준을 정하는 핵심 기구다. 미국이 지난해 9월 총력을 기울여 중국이 맡고 있던 사무총장직을 가져오기도 했다.

한국은 국제표준이 제정되는 초반부터 적극 참여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앞선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해도 표준으로 채택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스마트폰 운영체제는 구글 안드로이드와 애플 iOS가 표준이 되면서 세계 모든 기업이 두 운영체제에 맞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다. 더 나은 운영체제를 만든다고 해도 이를 채택할 기업이 없다. 인공지능을 비롯해 미래를 결정지을 미래 첨단산업도 마찬가지다.

표준을 선점한 국가와 기업이 새롭게 창출되는 혁신산업의 선두주자가 될 것이다. 우리 정부도 2027년까지 첨단기술 250건을 국제표준으로 제안해 미국, 독일, 중국에 이어 세계 4대 표준강국으로 부상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총력전으로 나서야 한다.

또한 우리나라는 ITU를 비롯해 국제표준을 정하는 국제기구의 최고 지위 자리에 진출해야 한다. 쿼드 등 기술 표준이 정해지는 모든 곳에 적극 참여하고 우리가 주도해 우리 기술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첨단기술로 세계 경제 지형이 바뀌는 지금은 대한민국이 국제표준을 주도하는 국가로 도약할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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