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마블 스튜디오의 슈퍼히어로물 시리즈 때문에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알려졌지만, 이 용어는 이미 오래전에 나온 개념이다.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영화적 세계를 말한다. 각각의 별도의 영화가 모여 하나의 세계관을 이루는 방식이나 형식을 일컫는다. 만화, 소설 등 개별 작품이 세계를 공유하며 하나의 작품 체계를 이루는 Shared Universe라 하는데,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영화 영역을 가리킨다.

마블 스튜디오 영화 콘텐츠는 ‘Marvel Cinematic Universe(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고 하는데 영어 앞 자를 따서 MCU라고 보통 칭한다. 마블의 경우는 만화 작품을 기본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형성하게 됐다. 선택적으로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을 통해 구축하는데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한 영화, 드라마 등 영상콘텐츠는 모두 이 세계관에 속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어벤져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쓰는 세계관은 유니버스와 다르다. 마블에서 말하는 유니버스는 일단 지구의 세계가 아니라 우주의 세계관이다. 흔히 인식하는 하나의 지구 세계관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

마블 코믹스에서 주로 다루는 ‘지구-616’이고 ‘지구-199999’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지구이다. 서로 대등하지만 다른 평행 우주라는 개념이 나오는 배경이다. ‘파 프롬 홈’에서부터 멀티버스가 등장하기도 한다. 멀티버스는 여러 차원의 우주들 즉 다중우주 그 자체를 의미하는 단어로 수많은 유니버스를 통틀어 칭하는 말이다. 다른 멀티버스나 멀티버스들이라는 복수형은 있을 수 없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는 각 차원에 있는 스파이더맨이 한 번에 등장하기도 했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는 이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다. 어쨌든 이것도 우주를 배경으로 한다. 동양권에서는 우주로 확장되지 않는다. 북미를 중심으로 유니버스가 부각이 된 것인데 이는 1960년에 달착륙 등 우주 개발이 열띤 냉전 경쟁의 대상이 되면서부터다. 하지만 동양권은 이런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 있었고 이제 중국이 우주 경쟁에 뛰어들며 부각이 되고 있다.

케이팝 가운데 엑소나 방탄소년단이 세계관 구축이나 스토리텔링을 언급하는데, 이는 유니버스의 개념과 달랐다. 오히려 원래의 유니버스를 표방했던 아이돌 그룹들은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사실 영화에서도 한국은 ‘스타워즈’ 시리즈도 반응이 그렇게 높지 않다. 매우 리얼리즘 즉 현실주의 문화 풍토가 강하기 때문일 수 있다. 방탄소년단의 세계관은 이 지구 위에 지금 사는 청춘들의 서사 즉 고민과 갈등, 혼동 그리고 사랑과 희망을 말하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사실 마블 유니버스도 지구를 배경으로 영웅들이 빌런들에 대응해 같이 지구를 지키는 내용이 큰 인기를 끌었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또 하나의 MCU로 불렸는데,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였다. ‘범죄도시1’의 흥행 이후 제작진은 8편을 예고했고, 심지어 관객이 원하면 그 이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태도를 피력했다. 이를 통해 핵심은 나름의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축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기존의 할리우드 방식과는 같고도 달랐다. 일단 프렌차이즈 방식으로 하이컨셉과 포맷은 같았다. 영웅이 나쁜 놈들을 시원하게 응징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범죄도시’는 단 하나의 주인공이 등장하고 다른 이들은 모두 조연이자 주변인 그리고 강력한 악당이 있을 뿐이다. 주연 배우인 마동석이 기획·제작·연기를 모두 하므로 연기의 몰입과 핍진성이 느껴질 수 있다. 마동석의 캐릭터 매력에 매우 의존한다. 영화 베테랑에서 선보인 아트박스 사장 캐릭터의 확장판이다. 동네 아저씨나 형이지만 자칫 조폭과 구분이 안 되지만 상식적인 도덕 윤리관에 생활 속 불의를 참지 못하는 협객 같다. 더구나 칼이나 총, 몽둥이 심지어 심오한 고난이도의 무술 테크닉 없이 단 하나의 미니멀리즘의 주먹으로 나쁜 녀석들을 혼내 주는 캐릭터 컨셉이다. 또한 범죄자들을 적절하게 활용해 빌런을 응징한다. 이는 수사관들의 현실적인 운영 방식을 잘 보여주면서 마동석만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적 세계관은 우주관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나 처세 철학을 말하는 데 더 가깝다. 더구나 액션 영화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 유머와 재치가 등장하는데 이는 마석두의 캐릭터를 인간적으로 만들어준다. 범죄의 현실을 드러내는 것에 멈추지 않고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해결 방법을 마석두를 중심으로 찾아가는 과정에서 마석두를 중심으로 한 세계관이 드러난다. 특히 빌런들이 뭉치고 이에 마석두는 하위 범죄자들을 활용해 대응한다. 사실 드라마 카지노의 차무식이 이런 수완에 능숙하지만, 그냥 카지노 범죄자로 전락시키게 놔둔 것은 아쉬움이 있다.

나쁜 놈들은 법적 처벌 전에 좀 맞아야 한다는 직관적인 가치관은 대중적으로 크게 어필했다. 사법 불신의 풍토에서는 더욱 직관적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여러 영웅이 등장하며 캐릭터의 다양성으로 확장해 가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다르다. 관객이 원하는 캐릭터의 매력을 중심에 두고 다른 캐릭터와 스토리텔링 그리고 에피소드를 확장 혹은 심화하는 방식이 MCW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대리만족하게 하는 비현실적인 액션 응징물이지만, 우주가 아닌 지구 여기, 사람들이 고민하는 그 지점에서 자신의 세계, 월드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을 케이 콘텐츠의 모델은 다시금 생각할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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