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환 울산광역시의회 의장
김기환 울산광역시의회 의장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의 본관 로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현대중공업은 물론 오늘날 범(凡)현대가의 창업자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흉상(胸像)이다. ‘왕회장’이라는 별칭이 더 어울리는 정 명예회장은 오래전 고인이 됐지만, 생전 모습을 담은 흉상은 울산대와 아산병원 등 전국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창업자가 평생 일궈온 불굴의 도전과 모험정신을 기리고, 뜻을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출로 흉상을 건립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물론 삼성 이병철, SK 최종현, LG 구인회, 롯데 신격호 등 내로라하는 굴지의 대기업들은 모두 창업자의 흉상을 만들어 유지를 받들겠다는 것을 대내외에 알림으로써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를 동시에 모색한다.

 흉상은 기업인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서 생애 굵직한 업적을 남긴 사람을 추모하고 기리는 도구로 활용된다. 이승만과 박정희, 노무현 대통령 등 전임 대통령들도 기념관 등에 흉상이 건립됐으며, 김구와 윤봉길 등 독립운동가들도 흉상을 세웠다. 시인 이육사와 소설가 김동리 등 문화예술인들의 흉상 건립은 이제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으로 정착됐다.

 김소월과 박경리 작가의 흉상은 국내에도 있지만, 러시아에도 설치돼 한국인의 위상을 빛내는 동시에 동포들에게는 자긍심의 상징으로 우뚝 서 있다. 반면,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흉상은 서울에도 건립돼 위대한 인물의 생애를 추앙하는데 국경이 없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세계적 흉상의 상징물은 미국 사우스다코다주 러시모어산에 있는 일명 ‘큰바위얼굴’ 조각상이다. 큰바위얼굴 조각상은 미국의 초대 조지 워싱턴부터,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 역대 대통령 4명의 얼굴을 새겼다. ‘건국, 성장, 보존, 발전’이라는 미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키워드에 가장 적합한 지도자라는 기준으로 삼았다. 15년에 걸쳐 1941년 완성된 큰바위얼굴 조각상은 올해로 82년에 불과하지만, 미국인은 물론, 미국을 찾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한번은 둘러봐야 할 필수 관광지가 됐다. 미국인에게는 자부심의 공간으로, 외국인들에게는 관광의 성지나 다름없다. 연간 방문객은 수백만명이 넘고, 큰바위얼굴 조각상을 통해 세계의 여러 나라 사람들이 미국 현대사 대통령을 알게 될 정도로 영향력과 파급력이 크다. 

 울산은 1962년 특정공업지구 지정 이전에는 동해안의 조그만 어촌 마을에 불과했다. 논밭과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았지만, 근근이 입에 풀칠하는 정도의 삶이었다. 그랬던 울산이 오늘날 세계적인 산업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게 된 것은 특정공업지구 지정 이후 기업들이 앞다퉈 공장을 지으면서 비롯됐다. 60년이라는 짧은 역사에서 울산은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일궈냈다. 압축성장과 고속발전의 기틀은 기업인들의 용단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그때 현대 정주영, 삼성 이병철, 롯데 신격호 등의 창업주들이 결단을 내려준 덕분이었다. 정부의 든든한 뒷받침과 함께, 기업 창업자의 혜안이 오늘의 울산을 만들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경제가 우뚝 설 수 있었다. 용단(勇斷)과 결단(決斷), 혜안(慧眼)의 리더십을 두루 갖춘 창업자를 산업수도 울산이 기억하고 기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조치다. 

울산시는 최근 유니스트 인접한 부지에 ‘위대한 기업인 조형물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이 사업과 관련 김두겸 시장은 "오늘날 울산의 영광은 기업에서 시작됐고, 그 창업주들의 업적을 기리고자 흉상 설치를 추진하는 것"이라며 "수도권 투자나 이전을 고려 중인 기업이 적지 않는데, 흉상 설치 사업은 그런 결정을 재고하게 하고 울산 재투자를 유인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두겸 시장이 밝힌 추진 배경처럼, 울산은 창업주를 비롯한 기업인과 기업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될 수 있는 길이다’라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어록을 되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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