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간호 극한비극,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강성웅 교수 특별기고] 중증장애 딸 살해 어머니 선고를 보며

영화 ‘도망자’ 스틸컷

1993년 개봉한 영화 ‘도망자’는 해리슨 포드와 토미 리 존스의 추격전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작이다. 50대 후반 이후의 사람들은 어릴 때 120부작으로 방송된 미국 드라마가 이 영화의 원조라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아내를 살해한 범인으로 누명을 쓴 의사가 경찰에 쫓기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100개가 넘는 드라마 에피소드 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 너무 오래 전이라 자세한 장면은 기억할 수 없지만, 개략적 내용은 이랬던 것 같다.

누명을 쓴 의사 리차드 킴블이 어느 소도시를 방문했을 때 발생한 장애인 살인사건과 연관된 것이었다. 어느 중증 장애인이 살해됐고 그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던 천사같은 누이는 깊은 슬픔에 잠긴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 듯 했지만 누이가 범인으로 밝혀지는 충격적인 결말로 반전한다. 누이가 죄책감에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도 수사관들에게 울부짖던 말이 아직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너무나 사랑했던 동생이었지만 나도 자유롭고 싶어요.”

1급 장애를 앓고 있던 30대 딸을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60대 A씨가 25일 오후 인천지방법원에으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들어오고 있다. A씨는 법원에 출석해 “딸에게 미안하지 않나”는 취재진의 질문에 “너무 미안하다, 같이 살지 못해서”라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사진=뉴스1]
중증 장애인인 딸을 2022년 5월 살해한 60대 어머니 재판에 대한 기사가 최근 보도됐다. 재판부는 실형을 선고하지 않고 집행유예로 선처하였고 검찰도 구형량보다 훨씬 약한 형이 선고되었음에도 항소를 포기했다. 검찰은 “피고인 자신도 심신이 약해져 대안적 사고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전문의 감정이 있었고 피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 역시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피고인인 어머니는 “제가 버틸 힘이 없었다”며 “내가 죽으면 딸은 누가 돌보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두 사건 모두 사랑과 헌신으로 현실을 무한정 버티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준다. 생명을 침해하는 불행을 반복하게 둘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장애인의 삶도 소중하지만, 혼자 자유롭게 살고 싶은 보호자 자신의 삶도 가볍지는 않다. 어느 하나를 버리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가족 울타리 안에서 이 둘의 양립은 거의 불가능하다. 검찰도 이 불행의 원인중 하나로 ‘이용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제한적’이라고 했다. 사회 안전망 제도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처음 제기된 문제가 아니다. 왜 자꾸 반복되는가.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 수준과 복지 예산으로는 지금 수준의 사회 안전망이 한계인가.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더 나은 사회 안전망 구축은 한참 미래의 일인가.

앞서 언급한 두 경우의 가족들이 열린 마음으로 응원해 주는 사회에서 살았다면 그 가족들은 덜 지치고 훨씬 더 오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족 장애인을 돌볼 수 있었을 것이다. 가족이 감당하기 힘든 시점이 되었을 때 제대로 관리해 줄 수 있는 시설에서 지낼 수 있었다면 설령 떨어져 살더라도 죄책감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일부 장애인 단체가 탈시설화를 주장하며 공격적 시위를 이어가고 있지만, 장애인에 대한 정책은 시설화와 탈시설화 중 어느 것이 좋다는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말고 언제 어떤 방식이 누구에게 적절하냐는 관점에서 결정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조화롭게 운영된다면 많은 부분이 개선된다. 당연히 선행되어야 할 것들도 있다.

시설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지만, 탈시설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을 돌보는 지원금뿐 아니라 비장애인들의 지금보다 진전된 인식이 필요하고, 사회 전체의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선 건강보험 재정 고갈을 우려할 정도로 의료혜택이 확충되었지만 분석된 자료를 보면 낭비성 재원이 상당해 보인다. 이러한 낭비성 재원을 활용한다면 제대로 된 시설화가 충분히 가능하다. 이렇게 실현 가능성이 충분한 상식적인 해법이 있음에도 우리는 자꾸 문제를 풀다가 중단하고 잊어버린다. 반복되는 망각, 그리고 이어지는 비극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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