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MB에게 이미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인간 핫라인 이동관

이동관 전 청와대 대변인이 현재 시점에서 맡은 공식적 직책은 용산 대통령실의 ‘대외협력 특별보좌관’이다. 이동관이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에 이어 홍보수석비서관을 역임한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그리 특별한 예우라고 말하기 어렵다.

2020.11.2 오후 서울 강남구 이명박 전 대통령의 논현동 자택에서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을 비롯한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동부구치소에 재수감 예정인 이 전 대통령을 배웅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2020.11.2 오후 서울 강남구 이명박 전 대통령의 논현동 자택에서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을 비롯한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동부구치소에 재수감 예정인 이 전 대통령을 배웅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관건은 이동관 전 대변인에게 주어진 보직의 성격에 있다. 이동관은 보수층을 제외한 중도층과 진보층 성향 유권자들 사이에서 공감과 호평을 얻어온 인물은 아니다. 정권의 외연과 지지기반을 확장할 폭넓은 대외협력 업무를 담당하기에는 썩 어울리지 않는 유형의 사람인 셈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이동관에게 용산 대통령실의 대외협력이라는,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을 과업을 위임했다. 이 전 대변인이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협력대상과의 연락책 겸 전령사 구실을 하고 있다는 추리가 가능한 까닭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동관을 핫라인과 메신저로 활용하면서까지 긴밀하게 대화하고 소통하며 수시로 의견을 교환해야만 할 상대방은 과연 누구일까? 필자의 상상력이 워낙 빈곤한 탓일지 몰라도 나는 이명박 전 대통령 이외에는 달리 뾰족이 생각나는 인물이 없다.

이동관은 이 전 대통령의 속 깊은 의중을 오랫동안 대변해왔다. 이명박이 몇 년에 걸친 수감생활을 하는 기간에도 이동관은 MB 곁을 떠나지 않았다. 더욱이 이동관은 단순히 주군의 입 노릇만 하는 여느 대변인과는 다르다. 그는 이명박 진영의 대표적 책사로서 이 전 대통령이 크고 작은 정무적 기획을 하는 데 핵심 브레인 역할을 해왔다. 이재오 전 의원이 야전에서의 전투를 이끌어왔다면, 이동관 전 대변인은 사령부에서의 전략 수립을 주도해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윤석열 정권을 마침내 완전히 인수합병(M&A) 했다는 주장에 가장 강력히 반발할 사람은 당연히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권력의 운전대를 꽉 붙잡고 있는데 현 정권이 어떻게 이명박 정권 시즌 2가 될 수 있느냐며 거세게 항변하고 싶을 터이다.

만약 당신이 설령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을지언정 목적지와 주행 경로를 스스로 설정할 수 없다면 당신은 결국은 남의 차를 대신 몰아주는 대리기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권의 운전대는 분명히 윤석열 대통령이 쥐고 있다. 문제는 외교와 안보 정책으로부터, 경제와 교육 분야에 이르기까지 마치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복귀해 나라를 다시 다스리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현 정부의 국정운영의 기조와 방향성 곳곳에서 물씬 풍긴다는 점이다. 심지어 일례로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모두 그 가치와 효과를 평가절하했단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한 지 만으로 10년째 되는 올해 들어와 명예회복 아닌 명예회복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명박계의 당정대 천하통일

당정대, 즉 집권여당인 국민의힘과 행정부와 용산의 대통령실은 윤석열 정권을 지탱하고 구동시키는 세 개의 주요한 축이다. 한데 정권의 3대축 전부가 지금은 이명박 진영의 직접적 통제권 아래로 편입ㆍ종속된 양상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5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6.5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5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6.5

대통령실의 최고 실세로 손꼽히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MB 정권 시절의 청와대에서 근무하다가 불명예 퇴진을 당했다. 불명예 퇴진의 오명과 굴욕에도 불구하고 김태효가 이명박 그룹과 완벽히 결별ㆍ절연했다는 후일담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명목상의 수석 참모인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에서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다.

내각 안에서도 MB의 색깔이 완연하게 포착ㆍ감지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명박 정권에서 요직인 주미대사로 일했고, 이주호 교육부총리는 MB 정부의 마지막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출신이다.

압권은 내년 총선에 선수로 출격할 국민의힘이다. 당을 들었다 놨다 하며 ‘밤의 당대표’로 군림하는 장제원 의원부터가 당장 이명박 사단으로 분류된다. 흥미로운 대목은 전직 당대표 이준석을 쫓아내고, 현직 당대표로 김기현을 옹립하는 데 앞장선 장제원이 이명박 진영 안에서의 서열을 따지면 주전급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동관 전 대변인이 붙박이 주전 투수의 위치라면, 장제원은 대주자로 간간이 출전 기회를 잡는 수준의 입지다.

방금 예시됐듯이 이명박의 사람들은 윤석열 정권에서 고문의 위상과 자문의 기능을 벗어난 지 이미 오래다. 그들은 권부의 요소요소에 진주해 있다. 이제 윤석열 대통령 수중에 온전히 남은 영역은 검찰과 경찰 같은 공안 분야 정도다. 윤석열 정권이 시대착오적 공안통치에 몰두하는 것처럼 국민에게 인식되는 것은 윤 대통령이 가진 카드가 물리적인 공권력의 적나라한 행사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고도의 산업화를 이룩한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무는 주역이자 선한 역할이고, 법무는 조연이며 악역이다. 주역과 선한 역할은 이명박의 사람들이 차지하고, 조연과 악역은 윤석열 쪽 인사들의 몫이 된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만 할까?

정치에서는 확대해석을 경계해야만 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적 격변은 확대해석이 낳은 결론을 증명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기 마련이다. 이동관 전 청와대 대변인의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취임이 아들이 가해자로 드러난 학교폭력 사건으로 말미암아 일단은 제동이 걸린 형국이다. 그렇지만 정권의 무게중심이 윤석열로부터 이명박으로 넘어가는 대세에는 본질적으로 지장을 초래하지 못하리라는 게 나의 판단이고 예측이다.

무엇보다도 윤석열 대통령과 그를 추종하는 전현직 특수부 검사들의 국정운영 능력이 형편없음이 밝혀진 데 근본적 원인이 있다. 현 정권의 실질적 운영권이 윤석열 세력에서 이명박 진영으로 양도되는 사태에 조중동 종이신문 삼총사가 견인해온 남한의 주류 보수집단은 별다른 이견과 반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쯤에서 이동관의 진정한 임무가 뭐일지 우리는 곰곰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그는 어쩌면 정권인수위원장으로 용산 대통령실에 입성한 게 아니었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 공무원이 대통령이 되는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처음으로 출마한 공직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는 초유의 기록도 세웠다.

그러니 똑같은 정권 아래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두 번 꾸려지는 초유의 기록 또한 세우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첫 번째는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에서 정권을 이양받는 과정에서 안철수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던 공식적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였다. 두 번째는 이명박 진영이 윤석열 세력으로부터 국가권력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이동관이 방통위원장 완장을 차고서 실제로는 정권 장악의 특무상사로 활동할 비공식적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다.

대통령이 법에 관한 전문성도 풍부하다면 원활하고 성공적인 국가운영에 유의미하게 도움이 된다. 반면, 대통령에 법에 관한 전문성만 풍부하고 나머지 부문의 일들에 대해 답답할 만큼 문외한이면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담보하기 힘들다.

권력의 속성은 잠시도 진공상태를 허용하지 않기 마련이다. 법률과 수사에 관한 전문성만 풍부한 윤석열 대통령이 도처에 결과적으로 조성하고 만 권력의 심각한 공백은 이명박 진영에 의해 차례차례 채워지고 있다. 이와 같은 대담하고 도발적인 정세분석이 근거 없는 내 일방적인 억측과 오판으로 끝나기를 바라는 건 단지 필자 혼자만의 희망사항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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